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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style.kr/노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3.25 Bohemian Rhapsody - Queen (보헤미안랩소디-퀸)
  2. 2015.03.20 호텔켈리포니아 - 이글스
  3. 2012.10.14 강남스타일
  4. 2012.07.24 Maksim Mrvica - Croatian Rhapsody (LIVE) HD

이번 역시도 수업시간에 배웠던 노래의 가사에 대해 적는다.

 

보헤미안랩소디의 경우 캘리포니아와 같이~ 매우 많이 들었다.

(물론 뜻을 해석할 마음없이 간간히 들리는 가사만 ㅋㅋ흥얼거리며~~)

 

그런데, 어떠한 노래인지는 자세히 몰랐다.

 

Hotel califonia 처럼 노블티 송으로 분류된다. 또한, 노블티 송은 중의적 의미가 많은 곡이기도 하다.

 

노블티 송은 위키백과에 정의된 것을 소개해보면

 

 191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노블티 송(novelty song)은 우스꽝스럽거나 의미없는 가사로 이루어진 대중음악으로 주로 재미있게 표현된다. 음악에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고 해서 모두 노블티 송은 아니다. 이 용어는 Tin Pan Alley가 대중음악의 대분류를 작성하는 중 처음으로 사용되었다.[1] 노블티 송은 1920~193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2][3]

- 노블티 송에 대한 위키백과 클릭

 

 

우선 퀸은 락을 잘 모르더라도 광고음악 등 미디어에서 흔하게 거론되는 그룹으로 생소하지는 않다.

 

퀸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가 주활동 기간이며, 전세계에 많은 팬을 가진 그룹이다.

멤버는 프레디 머규리,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로 구성되었다.

아레나 록, 글램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프로그래시브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그룹이다.

2001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3년에는 밴드단위로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멤버 중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인한 기관지 폐렴 등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출신 록밴드 퀸의 대표곡 중 하나다. 1975년에 발표한 정규 앨범 <a night at the opera>에 수록된 곡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작곡한 이 곡은 아카펠라, 발라다, 오페라, 하드 록 등 전혀 다른 장르가 섞인 실험적인 곡임에도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가사는 중의적인 의미로 여러가지로 나뉘는데, 정확한 해석을 하는 것은 무리고,

다만, 작사가의 삶을 비견하여 파악하는게 제일 괜찮지 않을 까 생각한다.

 

하단에, 여러 동영상이 링크되어 있음

 

Is this the real life?
이것은 정녕 현실인가?
Is this just fantasy?
아니면 그저 환상일 뿐인가?
Caught in a landslide
산사태에 파묻혀
No escape from reality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구나.
Open your eyes
눈을 뜨고
Look up to the skies and see
눈을 들어 하늘을 봐…
I'm just a poor boy (poor boy)
난 그저 불쌍한 소년일 뿐,
I need no sympathy
동정은 필요 없어.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왜냐면 나는 쉽게 왔다, 쉽게 가고,
little high, little low
그리 고귀하지도, 그리 비천하지도 않거든.
Anyway the wind blows,
어쨌든 바람은 불어 오지만
doesn't really matter to me, to me
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에겐….

(내가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를 의미?) //아카펠라


Mama, just killed a man
맙소사,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Put a gun against his head
총구를 그 사람 머리에 대고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방아쇠를 당겼더니, 그가 죽어버렸네요
Mama, life had just begun
맙소사, 삶이 이제 시작되었는데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제가 지금 그 삶을 내동댕이쳐 버린 거에요!
Mama, wooo
엄마, 우우우우….
Didn't mean to make you cry
당신을 울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요.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만약 제가 내일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더라도,
Carry on, carry on,
살아 가세요, 계속 살아 가세요.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Too late, my time has come
너무 늦어 버렸어, 내 차례가 다가왔어.
Sends shivers down my spine
등골이 오싹해지고
Body's aching all the time
몸은 계속 아파 와.
Goodbye everybody - I've got to go
안녕, 모두들 - 나는 가 봐야만 해.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너희 모두를 떠나서 진실과 마주해야만 해.
Mama, ooo - (anyway the wind blows)
엄마, 우우우우….(어쨌든 바람은 불어 오고)
I don't want to die
죽고 싶지 않아요!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때론 제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발라드 부분


(긴 기타 솔로)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한 남자의 윤곽이 보여
Scaramouche, scaramouche,
"겁쟁아, 허풍쟁이야,
will you do the fandango?
네가 진정 쏠 것이냐?[9]"
Thunderbolts and lightning
천둥과 번개가 [10]
very very frightening me
나를 매우매우 두렵게 해!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Figaro - magnifico-o-o-o
[11]


I'm just a poor boy nobody loves me
난 그저 불쌍한 소년일 뿐,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He's just a poor boy from a poor family
"그는 그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불쌍한 소년일 뿐입니다!
Spare him his life from this monstrosity
이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그를 구해 줍시다!"
Easy come easy go - will you let me go
편히 와서 편히 가노라 - 나를 풀어 줄 건가요?
Bismillah! No - we will not let you go - let him go
"신께 맹세코! 안 돼! 우린 널 풀어 주지 않을 거야!" "풀어 줍시다!"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 let him go
"신께 맹세코! 우린 널 풀어 주지 않을 거야!" "풀어 줍시다!"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신께 맹세코! 우린 널 풀어 주지 않을거야!" "날 좀 풀어 줘!"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never)
"널 놓아주지 않을거야!" "날 좀 놓아 줘! (절대로)"
Never let you go - let me go
"절대로 널 풀어주지 않을거야!" "날 좀 풀어 줘!"
Never let me go - ooo
절대로 날 풀어주지 않는구나….
No, no, no, no, no, no, no -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Oh mama mia, mama mia, mama mia let me go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절 좀 풀어 주세요!
Beelzebub has the devil put aside for me
바알제붑이 내게 악마를 데려왔어요!
for me
내게,
for me
내게요! //오페라 부분


(짧은 기타 솔로)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그래서, 너희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고 눈에 침을 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So you think you can love me and leave me to die?
그래서, 너희들은 날 사랑하고 나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Oh baby - can't do this to me baby
아, 그대여, 나에게 이럴 수는 없어, 그대여!
Just gotta get out - just gotta get right outta here
당장 나가야 해, 여기서 당장 나가야만 해! // 락 부분


Ooh yeah, ooh yeah


Nothing really matters
아무것도 상관없어
Anyone can see
누구나 알 수 있다시피
Nothing really matters,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나에겐 아무것도 상관없어, 아무것도 상관없어
Anyway the wind blows...
어쨌든 바람은 불어… //발라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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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s (이글스)

정보
Group | 미국 | 결성: 1970
장르
-
대표곡
Hotel California
멤버
Glenn Frey, Don Henley, Joe Walsh, Timothy B. Schmit

 

저번에 적은 것과 같이 사이버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수강과목중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정확한 제목은 모르겠다) 과목이 있다.

교수는 한때 영어강사로 꽤 유명했던 곽영일 선생이다.

 

첫 강의의 노래가 호텔 켈리포니아였는데, 그동안 흥얼거렸던 노래가

시대상황과 가사내용을 보니 이거... 내가 대충 느낌으로만 알았던 흥있는 노래가 아니다.

 

수업을 듣고 나니, (무식하게도) 밝은 줄만 알았던 노래가 아니였다.

 

이글스는 우선 1970년 캘리포니아주 LA에서 결성된 미국 록밴드이고,

호텔켈리포니아는 1976년 12월 8일에 발매된 호텔켈리포니아 앨범에 수록됐다. <위키백과>

 

 

주한미국대사관 아메리카센터의 자료로 197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변화의 계절 :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인들에게 1950년대는 만족스러웠던 시기인 반면,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대격변의 시대였다.

세계적으로 신생국가가 탄생했으며 기존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란이 일어났고,

미국에 맞먹을 만큼 경제적인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도 생겨났다.

또한 경제력 있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함으로써 군사력만이 성장과 확대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커져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1963 재임)은 강력한 통치력을 지니기 위해 행동주의자적인 접근방법을

활용했던 선도적인 인물이다.

그는 1960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프런티어’의 도전에 대응하라고 외쳤다.

대통령이 된 그는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삭감함으로써 강력한 경제성장책을 썼으며,

노령자를 위한 의료 지원을 강력히 지시하고 대도시 빈민촌을 구제하며 교육 기금을 확충했다.

미국인을 개발도상국으로 파견하여 지원하려는 케네디의 비전은 평화봉사단의 설립으로 현실화되긴 했지만 그가 제안한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실행으로 옮겨지진 못했다.

또 케네디는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에 착수했다.

그가 죽은 후에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은 소련을 뛰어넘었고

1969년에는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63년 케네디의 암살로 국회는 그의 입법안을 대부분 법률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후임인 린든 베인즈 존슨(Lyndon Baines Johnson, 1963~1969 재임)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나누어주는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정책을 펼쳤다.

정부가 메디케어(고령자를 위한 의료보험제도), 푸드 스탬프(빈곤층을 위한 식량지원),

수많은 교육사업(학교나 대학 설립은 물론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업)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하다보니 연방정부의 지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하면서 군사비 지출도 늘어났다.

케네디가 재임할 당시엔 소규모 국지전으로 시작했던 것이 존슨 재임 기간에는 군사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비 지출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난과의 전쟁과 베트남전쟁 모두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책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데 실패하면서

성장률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1973년과 1974년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들 간에 석유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에너지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심지어 생산량 감축이 끝난 후에도 에너지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거기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쳐서 실업률도 높아졌다.

연방정부 예산은 적자였고 외국과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주식시장은 침제되었다.

베트남전쟁은 지지부진하게 1975년까지 계속되었고 탄핵 위기에 처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Richard Nixon, 1969~1974 재임)은 사임했고,

미국인들이 1년 넘게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는 경제문제를 비롯해 어떠한 사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에서부터 강철,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수입품들이 늘어나자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기업활동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경제 상황을 가리켜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한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다.

사람들은 물건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더 많이 사들인다.

이렇게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도 상승하고,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도 생겨나며 물가는 더욱 오르고

다시 수요와 가격 등이 따라서 올라가게 된다.

근로계약서에는 생계비에 관한 항목이 자동으로 들어가게 되고, 정부는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척도인

소비자 물가지수에 따라 사회보장 따위의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은 근로자나 퇴직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끝없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방치한 꼴이었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기금은 자꾸만 늘어나서 적자 예산이 되었고,

정부는 많은 차관을 사용하는 바람에 이자 압박을 받으며, 기업과 국민들의 부담은 더욱 증가했다.

에너지 가격과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투자는 감소하고 실업률은 위험수위까지 올라갔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취임한 지미 카터(Jimmy Carter, 1977~ 1981 재임) 대통령은

경제의 악순환을 타파하고 정부 지출을 늘려 실업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근로자들이 스스로 임금을 내리고 생산자가 가격을 낮추도록

정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대신 항공, 화물트럭, 철도를 비롯해 여러 산업의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완만하게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것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산업은 그동안 요금이나 노선 등에서 정부의 철저한 보호와 규제를 받아왔다.

이러한 규제 철폐는 카터 행정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80년대에는 정부가 은행 이율이나 장거리통신 요금에 대한 통제를 완화시켰으며

1990년대에는 지역전화 요금에 대한 규제마저 풀어주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통화 공급을 단속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통화량의 공급을 억제함으로써 이율을 올렸다.

그 결과, 소비자 지출과 기업 대출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경제는 곧 깊은 침체 속으로 빠져들었다.


 

출처 주한 미국 대사관 아메리칸센터 

 참고- 일본의 경제상황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혼률은 급증하고 결혼 기피 현상이 증가하고 사회분위기는 어둡다.

 

이럴 때,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신흥종교등이 종종 발생하는데,

 

캘리포니아란 노래엔 이런 신흥종교 및 시대적 분위기 내포하고 있다.

 

잘 해석된 가사 및 동영상은 구글검색으로 관련 자료를 서치하다 잘된 블로그를 링크하니 그곳을 참고하길 바란다.

 

호텔켈리포니아 가사해석 및 동영상

그래도 동영상 하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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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naturalstyle.kr/노래 / 2012. 10. 14. 02:16

예전에 싸이-강남스타일 올렸는데 뭔가 날로 먹는거 같아서 삭제했는데, 예전페이지가 저장되었나 봅니다.

예전게시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데,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natural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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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달쯤? 멜론으로 처음 들었는데,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가끔식 챙겨 듣는 음악입니다. 긴박감, 슬픔, 의지가 떠오르는 음악입니다.





막심 므라비차(Maksim Mrvica, 1975년 5월 3일~)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9세의 나이로 피아노에 입문하여 1993년 자그레브 국제 음악 콩쿨에서 우승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연주자들의 선망의 무대인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피아노 콩쿨과 2001년 프랑스 파리 퐁트와즈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이다.[1]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사운드, 정열적인 연주로 유명한 막심의 빠른 템포의 속주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유키 구라모토나 이루마 같은 서정적인 피아노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대 연주계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2] 현란한 테크닉과 비트가 강한 리듬, 테크노 음악적인 분위기로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무대를 꾸미는 막심은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해 특히 한국과 일본,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2003년 첫 크로스오버 앨범 The Piano Player 이후 2011년 Appassionata까지 그의 앨범들은 항상 장르와 음악적인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며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처: 위키디피아


biography

장르와 음악적인 경계를 넘어 파격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크로아티안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는 1975년 아드리아해 연안 지베니크에서 태어났으며 9살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같은 해 첫 연주회를 가졌으며, 3년 후에는 오케스트라와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C장조 협연을 하였다.[3]

그가 15살 때 크로아티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고 매일 같이 폭탄이 쏟아졌다. 막심이 회상하길, 매일 1000개 이상의 수류탄이 떨어졌으며 일주일 내내 지하실에 숨어있어 햇볕을 보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4][5] 그 때 그를 지탱시켜 준 것은 피아노였다[6]. 그는 지베니크 음악학교 지하에서 사사 마리아 세크소로부터 레슨을 받으며 전쟁에 관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고, 이러한 살벌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1993년 막심은 자그레브에서 열린 콩쿨에 도전하여 우승하였다.[7][8] 그 후 막심은 5년간 자그레브에서 아르투로 베네데티 메켈란젤리의 제자인 블라디미르 크르판 교수를 사사하고, 이후 1년간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보냈으며, 2000년에는 파리로 옮겨 이고르 라츠코를 사사하였다.

크로아티아로 돌아왔을 때 막심은 자신이 언론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 출연과 인터뷰에 등장했고, 얼마 뒤엔 데뷔 앨범 「Geste/Gestures」의 작업을 끝냈다. 크로아티아 현대 작곡가들의 피아노 곡을 연주한 「Geste/Gestures」는 크로아티아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음반중 하나가 되었고, 크로아티아의 그래미라 할 포린(Porin) 어워즈의 최우수 클래식 앨범을 포함하여 모두 4개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9]

2001년에 막심은 크로스오버 현악 4중주단인 본드의 앨범에서 몇곡을 작곡했던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톤치 훌지크의 눈에 띠어 매니저 멜 부시를 소개받게 된다. [10]멜 부시는 클래식과 팝의 크로스오버 시장을 개척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었는데, 막심을 만난 후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한 곡 연주만으로 막심을 적임자로 지목하였다. 이 후 EMI에서 2003년에 발표한 막심의 첫 크로스오버 앨범인 「The Piano Player」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004년에 발매 된 「Variation I&II」, 2006년에 발매 된 그의 세번째 앨범인 「A New World」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의 인기는 크로스오버 콘서트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클래식 연주를 함께 한 아시아 투어를 거치면서 더욱 빠르게 상승하였다. 2007년 4월, 아시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런던, 크로아티아에서 피아노 솔로 콘서트 투어를 하였고, 8월에는 중국에서 CCTV 필름 어워드에 참가하였다. 또한 2008년 일본,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중국 투어를 하였을 뿐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 축하연주에 초청받았으며 2010년에는 그의 가장 최근 앨범인 「Appassionata」를 녹음하였다.[11]

막심은 「The Piano Player」의 홍보를 위해 2003.6.30일 내한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1년 3월에 창원, 대구, 서울, 대전에서 내한 공연을 하였다.


내한공연

2004-2007년

막심 므라비차는 2004년 4월 15일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1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쳐진 이 공연에서는 현란한 조명, 스포츠 중계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카메라 촬영, 무용수들의 등장 등 기존의 콘서트와는 확연히 다른 컨셉을 보여주었다. [19]뿐만 아니라 16명이 넘는 스태프와 각종 시스템을 이용하여 입체감 넘치는 무대를 보여주었다.[20]


2005년에 막심 므라비차는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내한 공연을 하였다.
우선, 2005년 4월 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심은 그의 두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이 무대에서 그는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룹 퀸의 히트곡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선보였다.[21]
2005년 12월에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처음으로 협연 아닌 단독 콘서트를 가졌다. [22] 그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편곡한 '뉴 월드 콘체르토', 판타지풍의 '노스트라다무스', 데뷔음반 수록곡 '왕벌의 비행' 등 그동안 발표한 세 장의 음반에 담긴 곡들을 중심으로 연주하였고, 색다른 분위기를 위해 관객들에게 검정의 드레스 코드를 요구하였다. [23]

2006년 9월 9일,10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막심은 네번째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 전 내한공연에서 녹음된 음악을 배경으로 연주했던 것과 달리 드럼, 전자기타, 현악 5중주단 등 그의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24] 관객들에게 더욱 생생한 연주를 선사했다. 또한 발매 예정이었던 4집 음반 The Electrik의 수록곡을 세계 최초로 이 무대에서 공개하였다. [25]

막심 므라비차의 5번째 내한 공연은 2007년 4월 25,26일에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렸으며 4집 Electrik의 수록곡을 주로 연주하였다. [26] 이 공연에서 막심은 화려한 무대 장치와 조명 효과 외에도 대형 비디오 스크린을 무대 뒷편에 설치해 더욱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를 꾸몄다. [27]

[편집]2009년

2009년 3월 18일 막심 므라비차 내한공연 모습

지난 5차례 내한 공연을 모두 매진시켰던 막심은 2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09년 3월 18일 그는 서울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며 12인조 밴드와 함께 내한해 역동적인 무대를 꾸몄다. [28] 또한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새 앨범 Pure의 수록곡도 이 무대에서 선보였으며, 앨범을 현장 판매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29]
2009년 10월 11일, 7개월 만에 막심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7번째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앙상블이나 화려한 무대장치보다 오롯이 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솔로로 기획됐다. [30] 1부에서는 브람스의 랩소디와 쇼팽의 스케르초 등 클래식 4곡을, 2부에서는 영상을 결합한 엑소더스, 빅토리 등 크로스오버 음악 6곡을 연주하였다.[31][32]

[편집]2011년

2011년 막심은 3월 4일 창원 성산아트홀을 시작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6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8일)까지 이어지는 첫 전국투어 솔로무대를 가졌다. [33]이 공연에서 막심은 국내에 발표되지 않은 앨범 수록곡을 비롯하여 1부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Dumka, 스크랴빈의 Etude 등 정통 클래식 위주로 선보이고, 2부는 그의 대표곡인 Kolibre, The Flight of the Bumble-Bee 등 일렉 피아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연주하였다. [34]앵콜 포함 총 14곡을 연주했으며, 연주곡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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